
게임업계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16년간 CD Projekt의 품 안에 있던 디지털 게임 플랫폼 GOG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공동 창립자 미하우 키친스키가 약 350억 원을 들여 자신이 만든 플랫폼을 다시 사들이면서, DRM 없는 게임 판매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게임 보존과 소비자 권리를 중시하는 GOG의 철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셈입니다.
2,520만 달러 인수로 시작된 독립
GOG의 독립은 단순한 사업 분할이 아닌, 철학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미하우 키친스키는 자신이 2007년 공동 창립한 GOG를 2,52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50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이 금액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지만, 창립자에게는 자신의 비전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한 투자였을 겁니다.
GOG는 2008년 출시 당시부터 남달랐습니다. 'Good Old Games'라는 이름처럼 오래된 명작 게임들을 현대 운영체제에서 다시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데 집중했죠. 당시 게임업계는 이미 Steam을 중심으로 디지털 권리 관리(DRM) 체계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GOG는 정반대 길을 택했습니다. "한 번 산 게임은 영원히 당신 것"이라는 메시지는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번 인수로 GOG는 모회사의 영향에서 벗어나 더욱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CD Projekt는 위쳐 시리즈와 사이버펑크 2077 같은 대작을 보유한 거대 게임사로 성장했지만, GOG는 여전히 틈새시장에 집중하는 플랫폼입니다. 규모가 다른 두 회사가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 전략적 방향성에 차이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독립은 오히려 양측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흥미로운 점은 인수 후에도 CD Projekt와의 관계는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위쳐와 사이버펑크 시리즈는 앞으로도 GOG 플랫폼에서 계속 판매될 예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업적 분리가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협력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DRM 없는 게임이라는 확고한 신념
GOG의 가장 큰 특징은 DRM 프리 정책입니다. 대부분의 디지털 게임 플랫폼은 불법 복제 방지를 위해 DRM을 적용하는데, 이는 정품 구매자에게도 불편을 줍니다. 인터넷 연결 없이는 게임을 할 수 없거나, 특정 클라이언트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식이죠. 심한 경우 서비스가 종료되면 구매한 게임조차 즐길 수 없게 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GOG는 이런 관행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GOG에서 구매한 게임은 설치 파일을 다운받아 백업할 수 있고, 언제든 원하는 기기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종속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예전에 게임 CD를 사면 그 CD가 내 것이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소유권을 구현한 셈이죠.
물론 이런 정책은 사업적으로 리스크가 큽니다. 불법 복제가 쉬워지고, 수익성도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GOG의 시장 점유율은 Steam에 비해 훨씬 낮습니다. 하지만 GOG는 이 철학을 타협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것이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만드는 차별화 전략이 됐습니다. 게임을 진정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GOG는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이번 독립 발표문에서도 "DRM 없는 게임 제공이라는 사명은 그 어느 때보다 GOG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필수 클라이언트와 폐쇄적 생태계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이 철학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최근 여러 게임 플랫폼에서 서비스 종료나 정책 변경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GOG는 그런 불안에서 자유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게임 보존이라는 새로운 가치
GOG가 처음 시작할 때 내세운 비전은 고전 게임 보존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년 전 게임을 최신 컴퓨터에서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운영체제 호환성 문제, 구형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 문제 등 기술적 장벽이 많았죠. 명작이었던 게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접근 불가능한 유물이 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GOG는 이런 고전 게임들을 현대 시스템에서 작동하도록 기술적으로 손보고, DRM 없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폴아웃 시리즈,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같은 90년대 명작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됐죠. 단순히 게임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영화나 음악은 아카이브 작업이 활발한데, 게임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부분을 GOG가 채운 셈입니다.
이제 GOG의 역할은 더욱 확장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명작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 현재의 우수한 게임들을 기록하고, 레트로 정신을 담은 신작들까지 포함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유통 플랫폼을 넘어서 게임 역사를 관리하는 아카이빙 기관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GOG Galaxy라는 통합 게임 클라이언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플랫폼의 게임 라이브러리를 한곳에서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데, 강제성이 없다는 게 특징입니다. 원한다면 클라이언트 없이 게임만 다운받아 즐길 수 있죠. 편의성과 자유를 동시에 제공하는 접근법입니다. 게임 산업이 점점 구독 서비스와 클라우드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GOG는 여전히 소유와 보존이라는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GOG의 독립은 게임 산업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대형 플랫폼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며 살아남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명확한 정체성과 충성도 높은 고객층이 있다면 틈새시장도 충분히 지속 가능합니다. 앞으로 GOG가 게임 보존과 소비자 권리라는 가치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지켜볼 만합니다. 게임을 진정으로 소유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여전히 GOG가 최선의 선택지일 테니까요.